• 2026/09/28 모두가 홀로 서 있을 때 처음으로 손을 내민 이가 있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의 누군가는 아무의 손도 받지 못한 채 손을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 손을 내민 이를 기다리는 나는 마지막 술래. 그의 손을 잡으면 세상은 드디어 원이 되고 천만 년 동안 벌인 놀이가 끝나 집에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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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18 부정적 감정은 마치 컴퓨터에 잔뜩 깔린 쓸데없는 프로그램과 같아서, 뇌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를 좁혀버린다. 부정적 감정은 사실 인간에게 있어 소중한 요소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만 할 경우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감정에 말 그대로 기운과 힘을 죄다 뺏겨서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일상이 반복되면 뇌는 그 상태를 기본값으로 학습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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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18 -그거야 제 인생이 서비스직이니까요. 저 아저씨한테도 서비스를 하고 있었던 거고. -야, 쟤한테 무슨 서비스를 할 게 있는데, 어? -아니 할 만하니까 하는 거죠, 뭐 제가 병신인 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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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18 @고릴라Mark1 속는것도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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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15 이뤄졌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왠지 아까부터 그런 것만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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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19 스승님의 웃는 얼굴을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선율. 고객님들도 그렇게 느끼실 것이 틀림없다. 어떤 언어로 허세를 부려도, 어떤 변화구를 던져도, 오염되지 않는 것. 그것은 거듭되는 시련에 맞선 역사가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오는 무구의 경지. 하지만 기다려, 머리를 사용하는 것은 거기까지. 우리는, 어디까지 도덕의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만약 투명 인간이 되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타인을 해할까? 해하지 않을까? 살아가는 권리로써 자, 무엇에 내던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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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4 영원에의 접촉 (···) 즉, 지나간 삶은 풍화하여 잊혀져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침전하였다가 사소한 감각적 사건을 계기로 되살아나는 것이며,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그러한 초시간적 과거를 붙잡아 고정시킴으로써 영원에 접촉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인류와 개인에게 진정한 자유는 먼저 갈등과 고통과 불완전성을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그것을 승화시키려는 의지에서 생겨남을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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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2 "내가 어떤 종류의 부름을 원해서 실험에 참여했고 결과가 이거야. 사람이 원하는 그대로 얻을 수 있나요? 신이 나에게 원하는 내 존재의 형태가 뱀파이어야. 그러면 저는 그렇게 살았어야 신을 믿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상현이 그걸 어떻게든 거슬러서(···) 결국은 신이 준 이 존재 형태를 소멸시킴으로써 인간이 되겠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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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2 목적지를 닮은 듯한 길을 아직 계속해서 달리고 있어 그것뿐인 나를 용서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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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25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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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23 그 꿈은 내게 오랫동안 충실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전능한 힘을 잃어갔다. 적들이 나타났고 방해를 받았다. 현실적인 것, 진지한 것, 부정할 수 없는 것이 그 적이었다. (···) 도처에서 나는 마력을 빼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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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8 얼마나 깊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어떤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 시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삶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와 나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리하여, 이들의 시선을 빌려 마음을, 기억을, 이웃을,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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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8 랭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진정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그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일까? 자신의 본래 모습을 죽이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환경을 견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의 삶은 진정 가치가 있는 시간일까? 살 가치가 있는 환경인가?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견디는 시간의 연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감옥에서는 삶의 그러한 특징이 더욱 도드라져 나타나는 것이지. 기다림과 견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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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7 "도망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자기 자신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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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5   6.52 설령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된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이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느낀다. 물론 그렇다면 과연 아무런 물음도 더는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대답이다. 6.521 삶의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의 소멸에서 인지된다.    (이것이, 오랫동안의 회의 끝에 삶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들이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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